책소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그와 그의 언어
2000년 이후 러시아 문단에서 두각을 드러낸 대다수 현대 작가들이 문학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를 꼽는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러시아 문학계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플라토노프의 작품들은 그만이 지닌 독특한 문체와 언어, 예술가로서의 신념과 주관이 뚜렷이 반영된 세계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특이한 시선으로 인해 종종 독자들에게 당황스러움과 난해함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어려운 단어로 쓰이지는 않았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다양한 의미들의 포화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모순적 속성을 지닌다. ‘시대의 언어’에 충실하려 했던 작가의 노력은 단순히 다양한 계층의 언어를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건들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시선과 반향을 담아낸다. 그는 평생 작가로서의 삶과 기술자로서의 삶을 병행해 갔는데, 이런 특별한 그의 이력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간의 본능과 자유의지
이 작품의 주인공 ‘모스크바 체스노바’는 어떤 사회적 제약으로도 가둘 수 없는 인간의 본능과 자유의지를 상징한다. 그녀는 매순간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플라토노프는 ‘논리적인’ 스토리라인을 사용하지 않고 종종 열린 결말의 형태를 취하는데 ≪행복한 모스크바≫ 역시 그렇다. 삶을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일시적이며 가시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과 이상 간에 존재하는 간극을 지속적으로 극복해 가는 과정으로 파악하려 했던 플라토노프적 사고의 반영인 것이다.
세계 속에서 인간은 어떤 식으로 자기 자신의 위치를 규정할 것인가. 나와 세계, 자연, 타인을 하나로 엮어줄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플라토노프가 자신의 작품과 주인공들을 향해 던지는 이러한 일련의 질문들은 작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뿐만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숙제로 남겨질 것이다.
200자평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탄생 120주년이 되는 2019년, 그의 작품 ≪행복한 모스크바≫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플라토노프의 평탄치 않은 운명처럼, 이 작품도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의 삶과 창작은 살아 숨 쉬어 다시 한번 우리에게 평범한 진리를 일깨운다. 인간은 언제나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진리. ≪행복한 모스크바≫는 그 자유와 본능의 세계다.
지은이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1899년 보로네시 근교에서 태어났다. 1918년 문단에 발을 들인 플라토노프는 1926년 12월 초부터 1927년 3월 중순 무렵에 걸쳐 탐보프에 머물렀던 약 3개월 반 동안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이 시기에 러시아의 역사적 운명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모은 일련의 소설군이 완성되었다. 판타지 소설 ≪에테르의 통로≫(1927), 표트르 대제 시기에 행해졌던 러시아 삶의 변화에 관한 소설 <예피판의 수문들(Епифанские шлюзы)>(1927)이 집필되었고, 지방 소도시를 상징화시킨 그라도프 시와 수도 모스크바의 이념가들 사이에 벌어지는 한 판의 설전을 풍자적 시각으로 묘사해 낸 <그라도프 시(Город Градов)>의 첫 번째 판본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1927년 보리스 필냐크와 함께 공저하여 잡지 ≪신세계≫에 게재했던 <체체오(Че-Че-О)>라는 흑토 지역 탐방기와 1929년 잡지 ≪10월(Октябрь)≫에 게재한 <회의에 찬 마카르(Усомнившийся Макар)>라는 단편이 프롤레타리아 작가연맹(РАПП)에 속한 비평가들 사이에서 “이중적인 이데올로기”와 “무정부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플라토노프의 문학적 행보에 서서히 제재가 가해지기 시작한다. 1929년 플라토노프는 혁명과 새로운 도시에 관한 장편 소설 ≪체벤구르≫를 완성한 뒤 인쇄소에서 조판 작업까지 마쳤지만, 결국은 출판에 실패하고 만다. 폐렴 증세로 계속 고생하던 플라토노프는 1951년 52살의 나이에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으며, 유해는 모스크바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옮긴이
송정수는 중앙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마치고, 이후 러시아학술원 산하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에서 20세기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작품 ≪행복한 모스크바≫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충북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다수의 학술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외국학연구소에서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현대 작가에 대한 소개서 ≪나는 현대 러시아 작가다≫를 공동 집필했다. 대표 논문으로는 <Andrey Platonov’s Literary Life in Korea : Text−Translation−Interpretation>, <러시아 입체미래주의 창작의 제 원칙들>,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러시아 문화의 이중적 정체성>, <생성과 통합의 시학 : 러시아 네오리얼리즘>, <광고텍스트의 이데올로기와 미디어 통치 : 펠레빈의 ‘Generation П’를 중심으로>, <러시아 출판문화산업의 현황과 과제>, <러시아 문화산업 정책의 현황과 과제>,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 러시아 문화정책 관점에서 바라본 ‘루스키 미르’> 등이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 문화 및 러시아 문화정책 연구에 좀 더 집중하면서, 아직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러시아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기 위한 다양한 인문 강좌를 기획, 참여하고 있다.
차례
한국어판 출판 기념 서문
주요 인물 소개
행복한 모스크바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모든 과제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백 년가량은 살아 줘야 충분할 듯싶지만, 그건 단지 그렇게 여겨질 뿐이라구! 결코 그렇지 않아! 40년가량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관 속에 들어가기 한 시간 전에 단박에 일을 시작해서 모든 걸 제대로 해낼 수도 있단 말씀이지. 대체 세상엔 왜 태어난 거람…!
−201쪽